2019년 아시아인 최초로 프랑스 정부가 공인한 디저트 명장이 된 김영훈 셰프. 지금은 도레도레 부대표로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그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도레도레 김영훈 쉐프
지난 밸런타인데이 때 더현대 서울에서 팝업을 진행하며 모프 컬렉션(MOF Collection)을 선보였다. ‘밸런타인데이=초콜릿’이라는 인식을 깨고 싶었다. 진짜 맛있는 구움 과자를 맛볼 수 있도록 마들렌, 티그레, 레몬케이크 이렇게 세 가지 기본 세트를 준비했다. 생트러플, 타히티 바닐라빈, 돔 페리뇽과 산딸기, 샤프란, 캐러멜과 꿀을 넣은 한정판 마들렌 세트도 만들었다. 하트 모양 케이크도 헤이즐넛 프랄린을 갈아 만든 버전, 크림치즈에 레드베리 잼을 넣은 버전으로 두 가지를 내놨다. 24K 금박을 통으로 씌운 케이크가 정말 큰 화제를 모았다. 존재감이 굉장했다. 금박 붙이는 데만 30분이 걸린다. 무엇보다 굉장히 맛있는 케이크다. 2013년 리옹에서 열린 ‘월드 페이스트리 컵’에 한국 동료들과 출전해 맛 부분에서 상을 탄 케이크 레시피를 재조합했다. 제과 부분에서 가
장 권위 있는 대회다. 지름 10cm, 높이 12cm짜리 케이크로 다시 만들면서 모든 제반 사항을 수정했다. 정말 맛있는 케이크는 어느 부위를 얼마나, 어떻게 먹어도 맛있어야 한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노고가 엄청나다. 레시피를 개발하기까지 들인 시간과 정성을 고려하면 금전적으로 환산하기 힘들지만, 모프 컬렉션 데뷔를 기념해 꼭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인스타그램 피드에도 자주 올라오던데, 현장에서의 반응은 어땠나?
소셜 미디어를 하지 않아서 찾아보진 않았는데, 상당히 화제가 됐다고 하더라. 사실 나흘 동안 현장 지키느라 피드백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무엇보다 즉석에서 설탕 장미를 만들며 꽃잎을 하나하나 떼어 시식까지 권하느라 정말 바빴다. 이제 밸런타인데이는 소중한 사람끼리 선물을 주고 받는 날이 되지 않았나. 꽃도 자주 선물한다고 해서 도레도레 팝업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꽃을 떠올리다 직접 설탕으로 장미를 피워봤다.
이번 컬렉션을 준비하는 데 꽤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 같다.
예전부터 천천히 준비하다가 이번 팝업을 계기로 데뷔했다. 모프 컬렉션은 내가 총대 메고 지휘해야 했기에 전사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메뉴, 레시피, 패키지, 생산, 판매까지 가능하도록 들인 시간이 생각 외로 매우 짧다. 운영팀, 생산팀, R&D팀, 디자인팀, 마케팅팀 그리고 무엇보다 대표까지 합심해 도레도레가 쌓은 노하우와 패기가 만들어낸 기적 같은 성과다. 모두가 여유 시간을 포기하고 좋은 결과를 성취했다는 점에서 경의를 표하고 싶다.
모프 메달
김영훈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모프(MOF)다. 모프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고싶다.
모프는 프랑스 정부가 4년마다 주관하는 공인 명장 콩쿠르다. 1924년 시작했으니 이제 100주년이다. ‘Meilleur Ouvrier de France’의 이니셜을 따서 부르는 말인데, 직역하면 ‘프랑스 최고의 장인’이라는 뜻이다. 모프가 되려면 경쟁자를 모두 제치고 1등을 해야 하는가? 아니다. 심사위원이 할당한 절대 점수를 넘어야 한다. 총 24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은 현장, 시식, 전시로 나뉘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살펴본다. 모프는 손기술만 좋다고 되지 않는다. 이론과 영어 시험은 물론 논문 작성이 필요할 때도 있고, 사람의 됨됨이까지 귀신처럼 체크한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고 처신하는 부분도 중요해서 실력이 출중해도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메달을 보면 모프의 지향점을 알 수 있다. 십자가 모양의 외형은 동서남북, 지혜의 왕 솔로몬으로 추측하는 인물이 서 있는 바닥의 점 24개는 24시간, 즉 하루를 뜻한다. 그가 잡은 컴퍼스는 정확함을 상징하며 좌우로 새긴 글씨는 ‘일하는 즐거움’, ‘일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의미다. 종합하면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장인이 세계 각지로 뻗어나가 제대로 된 지식을 전수하라는 뜻이니, 명장 한 명을 뽑을 때 굉장히신중하다.
그럼 지금까지 배출된 모프가 의외로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다.
절대 숫자가 극히 적다. 100년간 디저트 부문에서 탄생한 모프가 돌아가신 분까지 포함해서 총 200여 명이다. 디저트 명장이라면 제과, 초콜릿, 아이스크림까지출중한 게 기본이다. 그중 특히 좋아하는 부문에 출전한다. 나는 스승님이 아이스크림 명장이라 그분처럼 되고 싶어서 아이스크림 쪽에 지원했다. 당시 같은 분야에서 나를 포함해 3명, 초콜릿에서 2명, 제과에서 3명 정도 뽑힌 것 같다. 4년마다 8~10명이 통과한다고 생각하면 될 듯싶다.
한국에 숍을 냈으면 굉장히 인기였을 것 같은데, 그러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중학교 2학년 때 출국해 10년을 지냈다. 그 후 한국에서 5년, 다시 해외에서 6년을 보내고 2016년 한국에 정착했다. 한국어는 완벽하지만, 정서적인 성장기를 국외에서 보내서 한국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프는 프랑스 명장이다. 프랑스인의 입맛과 문화에 정통한 거다. 그래서한국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업과 관련한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협업하면서 시야를 넓히고 싶었다.
그렇게 선택한 곳이 지금 부대표로 있는 도레도레다.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는가?
들어오기 전부터 김경하 대표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사람 보고 들어온 거다. 그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바라보는 방향이 나와 잘맞았다. 정직하고, 솔직하고, 약속을 지키는 태도, 업계에서 모범이 되는 회사로 계속 키우려는 의지, 좋은 기업 문화를 만들기 위해 솔선수범하는 노력까지 도레도레라는 회사에 자연스레 녹아 있다. 애써 드러내려 하지도 않는다. 이런 모든 면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도레도레 금케이크
도레도레에 푹 빠진 것 같다. 명색이 부대표인데 이 정도 회사 사랑은 필요 하지 않을까?
나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한다. 재무제표도 보고, 도면도 확인하고, 메뉴도 개발하고, 생산도 하고, 설거지도 한다. 기술자로 쌓은 전문성을 바탕 삼아 회사에 많은 의견을 내면서 대표의 운영 방식에서 많은 걸 배운다. 회사를 더 키우기 위해 함께 성장한다는 생각으로 임한다. 회의하고, 서류 보고, 점포에 이슈가 있을 때 찾아가서 체크하면 시간이 사라진다. 그래서 주 5일이라는 개념이 없다. 필요한 만큼 일한다. 주 7일 나올 때도 있다.
취미를 즐길 시간이 있는지 모르겠다.
산악자전거, 웨이크보드, 스노보드 등 익스트림 스포츠, 전시 관람을 포함해 초콜릿 공예, 설탕 공예, 얼음 조각
등 손으로 뭔가 만드는 일까지 취미는 많다. 여유 있을 때는 하고, 없을 때는 못 하는 게 취미 아닌가. 일하는 기쁨을 즐기는 모습이다. 혹시 일을 통해 성취하고 싶은 게 있나? 작은 거 하나라도 섣불리 넘어가지 않고, 부족한 점이 있으면 채우고, 사람들을 존중하면서 더 성장하는 게 내 철학이다. 아이들에게도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빠가 되고 싶다. 옛날부터 스스로 하는 일로 존중받고,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시간을 쪼개어 관련 일을 돕는다. 얼마 전에 이탈리아에서 열린 아이스크림 세계 대회에서 한국 팀이 2등을 했는데 내가 코치를 맡았다. 격년마다 열리는 국제 기능 올림픽도 6년째 제과 분야에서 한국 국가대표를 코치해 함께 출전한다. 이런 게 다 무료 봉사라 도레도레가 더욱더 잘 돼야 한다.
올 5월 도레도레가 신규 브랜드를 론칭한다고 들었다.
종로구 계동에 ‘아모레 나폴리(Amore Napoli)’라는 나폴리탄 베이커리를 시작한다. 정 넘치고 사람 내음 가득한 이탈리아 나폴리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빵, 디저트, 커피, 에스프레소 등을 준비 중이다. 올해 도레도레가 19년 차다. 제가 담당하는 또 다른 브랜드인 마호가니는 론칭 10주년이고. 10년, 20년 후에도 여전히 사랑받기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으니 꼭 기대해달라.
Editor : Harry Jun